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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르네상스를 두려워하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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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과 불안 속에 핀 화려한 꽃
‘앙스트블뤼테’로서의 르네상스
문명의 붕괴라는 위기감 속에서
더 나은 인간과 사회문제 천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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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5년 어느 날 메디치 정권과 돈독했던 피렌체의 정치인 베르나르도 루첼라이가 나폴리에
특사로 파견되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를 더욱 매료시킨 것은 긴박한 외교 현안이 아니라
조반니 폰타노를 중심으로 결성된 나폴리 지식인들의 모임이었다. 그에 감화된 탓이었을
까. 루첼라이 역시 그 모임에 참석해 그들과 폭넓은 교분을 쌓았다. 그리고 이후 피렌체로 돌
아온 그는 ‘아카데미아 폰타니아나’로 불리던 그 모임에 영감을 받아 자신의 정원에 여러 학
자들을 모아 함께 글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군주정 치하의 나폴리와 공화정을
유지하던 피렌체, 이 두 상반된 세계의 지식인들이 하나로 결합하는 흥미로운 장면이다.
이 연재를 시작하면서 이야기했듯이, 르네상스를 읽는다는 것은 때론 서툴고 또 간혹은 화합
조차 할 수 없어 보이는 지적 투쟁기를 더듬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르네상
스인들은 하나의 공동체에 모일 수 있었다. 폰타노를 존경했던 피렌체의 귀족정주의자 루첼
라이가 주도하여 만든 이 모임에서, 설령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이지만, 피렌체 공화주
의의 대표 주자로 성장하는 마키아벨리와 귀차르디니가 자신들의 생각을 맘껏 표출하고 이를 동료들과 나누었다는 것은 이 점을 웅변하는 징표다
어쩌면 르네상스 문화는 ‘앙스트블뤼테’, 즉 불안 속에서 피어난 꽃이었다. 르네상스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14세기 중반부터 15세기 초, 이탈리아에 불어닥친 혼란이 그 묘판이었다. 흑
사병의 창궐로 하릴없이 내동댕이쳐진 인간 생사와 윤리의 문제, 교황권이 약화되면서 감지
되기 시작한 보편적 권력 질서의 붕괴 등이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문명 자체가 소멸할지도 모
른다는 위기의식으로 다가왔던 탓이다. 물론 15세기 중반의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은 그 불
안한 마음에 기름을 붓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감지했든 못 했든, 르네상스인들의 다양한 지적 실험은 이 문명적 위기감 속에서 태어났다.
의미심장하게도 그들은 자신들의 눈에 비친 문명의 붕괴가 어떤 특정한 제도나 체제가 아니
라 인간의 도덕적 타락에서 비롯되었다고 진단했고, 그에 따라 윤리적 개선을 통한 더 나은
삶을 꿈꾸었다. 르네상스의 아버지 페트라르카가 기계적이고 추상적이며 또 사변적이고 공
허할 뿐 결코 인간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당대의 모든 가치를 배격하면서 옛 고
전 시대로 눈을 돌린 것이 그 때문이었다. 이후의 르네상스인들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고전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와 같은 페트라르카의 지적 세례 덕분이었다.
의미심장하게도 그들은 자신들의 눈에 비친 문명의 붕괴가 어떤 특정한 제도나 체제가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 타락에서 비롯되었다고 진단했고, 그에 따라 윤리적 개선을 통한 더 나은
하지만 고대의 모든 것을 흠모하면 할수록 그들은 형용하기 어려운 모순에 빠지곤 하는 자신들을 발견했다. 옛사람들과 자신들의 차이가 더욱더 분명해졌던 탓이다. 우리가 살펴보았던
포조나 스칼라가 얼핏 서툰 상대주의자나 설익은 역사주의자처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대착오라는 개념을 통해 과거를 분석한 발라는 차치하더라도, 역사를 일관된 내
러티브로 엮어내기 시작한 브루니부터 그를 계승한 마키아벨리, 그리고 그들과는 다른 정치적 맥락에서 군주의 삶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밀라노의 데쳄브리오는 모두 그와 같은 맹아적 역사의식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더욱이 이런 그들의 생각은 인간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고, 또 교육이라는 세계로 그들을 이끌었다. 초기 르네상스 교육사상가 베르제리오가 인간의 덕성을 키워 사회를 개선하려 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더욱이 교육을 통한 인간의 개선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존재’라는 새로운 인간 관념으로 이어졌다. 마네티와 피코에게서 발견되는 인간존엄 사상은 바
로 그것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문명적 위기의 극복이 인간성의 회복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면, 인간에 대한 성찰이야말로 그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중요한 주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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